· 홈 > 구불길 안내 > 구불5길 물빛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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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현과 김제에서 군산으로 오가던 길목에 큰 저수지가 생기며 구슬과 같이 둥근산으로 둘러싸인 옥산 수원지(정식 명칭은 군산저수지)가 1937년 완공이 되었다. 구슬옥. 뫼산. 참으로 아름다운 옥산 저수지를 휘휘 돌아 걷다보면 숲길을 따라 대나무 숲도 걷고 왕버드나무 길도 걷고 몸과 마음이 자연과 하나로 이어지는 힐링의 시간을 갖게 된다.
- 청암산 정상에서 한바퀴 휙~ 돌아보면 군산시 전체를 볼 수 있다.
- 자연의 참모습과 보배로운 길을 걸어서 옥산을 빠져나가면 대려마을이 나오는데 옥산 수몰지구 주민이 많이 이주한 마을이다. 이곳에는 백제시대 쌓은 토성으로 추정되는 금성산성의 형태가 남아있다. 무릇 해안가에서 외침을 막는 중요한 요충지임은 능선 정상에 서보면 알 수 있다.
- 금성산에서 내려가면 내류마을이 나오는데 꾀꼬리가 버드나무가지에서 우는 모습을 닮은 지형이어서 안버들(내류)과 밖버들(외류)로 나눠지게 되었다.
- 마을 뒤에는 만석군인 강인득 첨사의 묘가 있는데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진다. 당대 만석군인 강첨사가 모친 상을 당해 도인의 말을 따라 어머니 묘를 쓸 때 미친척하면서 이리저리 옮기면서 혈을 찾아 쓴뒤 장가들고 벼슬하여 만석군이 되었다 후에 강첨사이 묘는 비를 안세우는 자리인데 비를 세워 망했다는 전설이 있다.
- 전설을 따라 걷다보면 회현의 유명한 다리인 칠다리를 만난다. 물줄기(도랑)가 일곱칠(七)자형으로 흐른다고 하여 칠다리라 부른다고도 한다. 그러나 다리를 만들때 다리난간 받침을 나무로 사용하여 그 위에 옻칠을 입혔다 해서 칠교라 했고 이를 두고 칠(漆)다리라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 학문에 뜻을 지닌 개인이나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많아 옥산의 활발했던 서원교육은 외지인에게 남다른 시각을 준다. 옥산의 자제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곳 한림마을의 염의서원은 일찍이 몸과 마음을 수련하고 학문을 익힌 덕에 뒷날 탁월한 문장과 청렴강직한 인품으로 널리 명망을 떨치었던 최치원 선생과 고경 선생 및 고용현 선생이 학문에 심취했던 곳이다.
- 옥산의 정신적인 지주이며 학문의 전당인 염의서원은 어려웠던 역사에 걸림을 당하면서도 면면이 이어온 굳은 기개가 있었다. 이 곳은 한림마을에서 백석제를 지나서 올라가면 있다.
- 산에서 흰돌이 난다고 하여 백석이라 부르게 되었고 백석마을 앞에 백석제가 있어 농사를 연년이 잘 짓고 흉년을 몰랐다고 한다.
백석제를 휙 돌아서 옥구읍 상평리로 향하면 옥산서원과 옥구향교가 있다. 조선 태종 3년에 당시 교동(옥구읍 이곡리)에 창건하였다가 인조 24년에 현위치로 이전했으며, 자천대는 신라 대학자인 최치원이 놀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 슬금슬금 자천대에 오르면 시 한 수 읊으며 천하를 마음에 품었던 고운 최치원이 된 듯 싶다.
자천대는 원래 옥구군 선연리의 동산에 있었으나, 일제시대 후기 군용비행장 안으로 편입되자 이를 상평마을로 옮기고 경현재라 하였다가 1967년 다시 지은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돌아왔을 때 세상의 인심이 어지럽고 어수선하자, 자천대에 올라 책을 읽으며 근심과 걱정을 달랬다고 한다. 건물은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의 2층 누각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여러 가지 색으로 된 무늬를 곱게 칠해 놓았다.
- 옥구향교 뒤편은 옥구읍성이 있고 성곽을 걸으며 장수를 기원해 본다.
옥구읍성의 경우는 전형적인 평산성(平山城)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산성과 평지성의 절충형이라 할 수 있는 평산성의 형태는 기본적으로 부정형의 타원 또는 원형을 이루며 돌이나 흙으로 쌓는데 옥구읍성 또한 읍성의 기본형태를 따르고 있다. 옥구읍성과 같은 평산성은 우리나라의 지방고을이 배후에 산을 등지고 고을이 형성되기 때문에 마을 뒷산에서 시작한 산성이 마을을 감싸는 형태의 자연발생적 형태라 볼 수 있다. 그 예로 경상남도 통영읍성은 그 규모만 다를 뿐 옥구읍성의 모습과 거의 유사하다.
- 역사를 따라 읍성을 걷다보면 햇살받은 물결이 반짝이는 아름다운 모습 때문에 은파라 불리는 은파호수공원에 다다르게 된다.
은파는 조선조 이전에 축조된 것으로 고산자 김정호 선생의 「대동여지도」에도 표시되어 있는 역사 깊은 곳으로 '은파유원지'는 근래에 유원지 개발 과정에서 붙여졌고 본래는 米堤池(미제지 ; 쌀뭍방죽)라고 불렸다. 또 한편에서는 '장자못'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런데 장자못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 하나가 있다. 물빛처럼 반짝이는 은파는 물빛다리와 음악분수가 어우러지는 야경이 으뜸이고 봄철 벚꽃터널은 눈과 마음을 핑크빛으로 물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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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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